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늘,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두운 새벽, 창밖은 비가 내렸는지 짙은 안개가 자욱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지쳐 보였다. 열차 안은 적막했고, 모두가 스마트폰 속 세상에 몰입해 있었다. 나 역시 이어폰을 끼고 빛나는 액정 속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도착역에 가까워질 무렵, 누군가가 갑자기 내 손에 종이를 쥐여주고 사라졌다. ‘이게 뭐지? 나한테 뭘 전달하려는 거지?’ 놀란 마음으로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는…
#2
사내 캠페인 홍보지였다. 겉보기에는 전 직원 휴식을 권장하는 ‘마인드 리셋 데이’ 안내였지만, 이미 재작년 날짜와 합병 전 로고가 찍혀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살펴보니, 뒷면에는 ‘대외비’ 표시와 함께 사옥 내 기록 시스템이 일시 정지된다는 공문이 흐릿하게 인쇄돼 있었다. 무엇보다 여백에 빨간 색연필로 휘갈겨 쓴 “이번 달엔 뭘 할래?”라는 문장이 선명했고, 손끝엔 붉은 자국까지 남아 마치 지장을 찍은 듯했다.